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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D센터][기고]한국도 휠체어 사용자가 2층 갈 수 있는 나라 되길 [왜냐면]
작성일 2025-03-04 조회수 28
배융호 | ㈔한국환경건축연구원 R&D센터 이사

장애인, 특히 휠체어 사용자들은 승강기가 없으면 다른 층으로의 이동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5층 이하의 건물에는 승강기가 없고 계단만 설치한 경우가 많다. 5층 이하의 건물에도 병원, 의원, 카페, 식당, 이용원·미용실 및 종교시설 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이용해야 하는 근린생활시설들이 많이 들어와 있지만, 휠체어 사용자, 유아차를 이용하는 영유아와 그 가족, 계단 이용이 어려운 고령자들은 승강기가 없는 건물의 2층 이상에 있는 이 근린생활시설들을 이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12월19일, 대법원은 장애인 등 3명의 원고가 제기한 소규모 근린생활시설에서의 장애인 접근권 침해 구제 소송에 대하여 그동안 법 적용 제외 대상인 소규모 시설이라는 이유로 1층 주출입구에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에 대한 접근권 침해라고 판결하였다. 대법원의 판결은 그동안 주출입구의 계단과 단차 때문에 1층에 있는 음식점과 카페 등 근린생활시설을 이용할 수 없었던 휠체어 사용자 등에게 이제 적어도 1층에 있는 근린생활시설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접근권 침해는 1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휠체어 사용자들이 2~5층으로 갈 수 없는 나라다. 건축법 등 관련 법률에 의해 5층 이하의 건물에는 승강기 설치가 의무가 아니며, 따라서 5층 이하 일반 건물은 물론이고 빌라, 연립주택 등 5층 이하의 공동주택에도 승강기를 설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5층 이하의 건축물에 승강기 없는 것은 6층 이상의 건축물에만 승강기 설치를 의무화한 법 규정 때문이다. 건축법 제64조(승강기) 제1항에서는 6층 이상이며 2천㎡(약 606평) 이상인 건축물에만 승강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접근과 편의증진을 위한 법률인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은 건축법 제64조의 규정을 준용하여 5층 이하의 건물에서는 기준에 맞는 계단, 장애인용 승강기, 장애인용 에스컬레이터, 휠체어 리프트 및 경사로 가운데 1개만 설치하면 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5층 이하 대부분의 건물에는 승강기 없이 계단만 설치되어 휠체어 사용자 등의 접근과 이동을 제한하고 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1층에 대한 접근권은 보다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현재처럼 건축법과 장애인등편의법에서 6층 이상이며 2천㎡ 이상의 건축물에만 승강기를 설치한다는 규정이 유지된다면, 승강기가 없는 건물의 2~5층은 휠체어 사용자 등이 영원히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제 필요한 것은 건축법과 장애인등편의법을 조속히 개정하여 휠체어 사용자를 포함한 모든 교통약자의 접근권을 2층 이상의 모든 층으로 확대하는 일이다.

장애인등편의법에서 5층 이하의 건물에서도 장애인 등의 접근과 이용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축법 제64조 제1항을 먼저 개정해야 한다. 장애인등편의법은 보건복지부 소관의 법률이고, 건축법은 국토교통부 소관의 법률이다. 건축은 국토교통부의 소관이므로 건축법을 먼저 개정해야 보건복지부도 장애인등편의법 개정에 나설 것이다. 특히 건축법 제64조 제1항의 규정은 1973년 이래 52년 동안 한번도 개정하지 않은, 문제적 조항이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장애인 등의 편의 증진은 보건복지부 소관 업무이지만, 국토교통부는 건축 소관 부처로서의 책임이 있다. 국토교통부와 보건복지부의 협의와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또한 건축주에게 부담되지 않도록 장애인용 승강기에 대한 면적 제외 등 기존 인센티브 외에 세금 감면 같은 다양한 지원 방안을 함께 논의해야 건축주의 호응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이제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접근권 보장을 넘어 유니버설 디자인의 흐름으로 가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말 그대로 장애·연령·성별·언어 등의 구분 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이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과 서비스를 의미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해 설계하고 운영하는 건축물과 도시 환경은 장애인은 물론이고 고령자, 장애인, 어린이, 영유아 동반 가족, 외국인, 일시적 부상자나 환자 등 모든 사람이 동등하고 편리하며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승강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올해는 건축법과 장애인등편의법이 개정되어 한국도 휠체어 사용자가 2층으로 갈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